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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산 가장 값‘싼’ 와인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727 작성일 2023-04-26 오후 5:35:00

내가 산 가장 값와인을 돌려드립니다



  햇살이 뜨겁더니 복숭아 한 알이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봄꽃이 피고 지고 다시 여름비가 

세차게 내리고 그치기를 41번이나 반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설픈 풋과일이 제법 알이 

굵어졌습니다.

박영관 회장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 인생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박 회장님이라는 햇빛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을 

고백합니다.

회장님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41년 세월 동안 살리는 길을 사시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목격했으니 독서당 개가 

맹자 왈, 하는 격이지요

사람이 사는 길은 더불어 살아가는 큰 길이어야 한다는 걸 몸소 보이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고 심장병 어린이를 무료로 수술해 살리셨습니다. 한 명의 아이를 

시술하는 데 500만 원 정도가 들지만, 그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 매년 많게는 수십 명 아이들을 

무료로 시술하셨습니다.

20096, 저는 회장님이 실천하고 계신 생명 사랑의 큰 진리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당시, 서울옥션은 함께 미술 공부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을 

한다고 했습니다. 박 회장님 내외분과 제가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았지요

<명성황후>에 출연한 배우들이 직접 출연해 감동이 더 컸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면에 

이르러서는 온 나라를 잃은 기분이 들었고, 힘없는 백성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맹세하며 노래를 부를 때에는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서울옥션은 막간을 이용해 뮤지컬 배우를 돕는 와인 경매를 했습니다

박혜경 경매사는 우리나라 1호 경매사답게 와인 경매도 참 매끄럽게 진행했습니다

10만 원부터 100만 원이 넘는 와인을 차례로 경매했습니다

보통 제값보다 20퍼센트 정도 높게 낙찰되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와인 한 병만을 남겨두었습니다

배우들을 돕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와인이라고 하니 낙찰 받아 

회장님께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경매가 시작되고 가격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많아야 200만 원 정도 되는 와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웬걸공개된 가격은 1,000만 원이었습니다.

마음이 갈팡질팡한 것을 스스로도 알았지만, 이미 선물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다음이라 

마음먹은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무엇에 홀렸는지 회장님께 그 와인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슨 와인인지도 잘 모르면서 한 번에 100만 원씩 올리는 경매에 참여하니, 그런 제 자신이 

어딘가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한편으론 회장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1,000만 원에 손을 들고 있으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곧 끝나길 바라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경매는 경합이 이뤄졌습니다.

 

1,100만원에 뒷자리 간이무대에 앉은 어떤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보아하니 초등학생 같았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시켜서 손을 들고 있는 듯했습니다

옆에 계신 회장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빛이 변하신 게, 화가 나신 듯 보였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의약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어찌 1,000만 원이 넘는 와인을 사겠다고 저러고 있나,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눈빛으로 저를 보셨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민망해서 이옥경 대표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이옥경 대표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얼른 수습해주었습니다. 3분 정도의 시간이 3시간인 듯

느리게 지나갔습니다. 경매는 1,200만 원에 제가 낙찰한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회장님 부부는 그 자리가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식사 자리가 있었지만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나려 하셨습니다. 와인을 낙찰 받은 이유가 회장님께 선물하고자 

한 것이기에 차 안에 와인을 실었습니다.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저의 마음을 꼭 받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회장님께서는 1938년생이시고, 와인은 1948년생이니 꼭 10년만 젊게 사시라는 의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청을 이기지 못하고 회장님께서는 와인을 받으셨습니다.

난감한 표정을 한 회장님과 1,200만 원짜리 와인,

그리고 저의 애꿎은 마음을 태운 승용차가 골목을 돌아 나갔습니다

한참을 서서 차량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가 너무 어색해 저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830, 회장님께서 제 사무실로 찾아오셨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계셨습니다.

다름 아닌 와인을 들고 말입니다.

조용히 책상에 놓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선물입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저는 또 한 번 할 말을 잊었습니다.

문제의 와인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페트뤼스 포므롤(Petrvs Pomerol) 

1948년산 빈티지였습니다와인비평가 로버트 파커는 페트뤼스 포므롤을 두고 영원한 청춘

영원불멸의 신비한 음료라 말했습니다.

인생의 멘토인 회장님을 생각하며, 제 마음을 신들의 음료라 불리는 빈티지 와인에 담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전달되기는커녕, 이 와인이 오히려 저를 속물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에 

낭패감이 들었습니다.

생각 끝에 그날 저녁, 와인을 들고 양재동 회장님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오늘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꼭 드세요.” 대문을 나오면서 와인이 다시 제 주인을 찾았다는 

생각에 시름을 놓았습니다그런데 웬일입니까.

다음 날 아침 830, 다시 회장님이 와인을 들고 사무실로 오셨습니다. “가족을 모두 불러놓고 먹으려 했으나 차마 마시지 못했네요.

이걸 마시면 큰 죄를 짓는 듯해서 말입니다.

한 잔에 200만 원 하는 와인을 어떻게 마십니까.”


두 번을 오갔으니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회장님은 와인을 내려놓으시며 그 자리에서 제안하셨습니다.

이 술 한 병이면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살릴 수 있어요.

어때요? 와인 대신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살려봅시다.”

와인을 다시 물려서 그 돈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베트남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을 해주자고 

하셨습니다.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한 뒤에야 와인 선물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서울옥션 이옥경 대표에서 전화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비용을 되돌려 받아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로 쓰겠다는 취지를 잘 전달해야 했습니다

분명 이옥경 대표가 상황을 이해해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경매된 비용은 벌써 배우들에게 지급되었고, 와인을 반품하면 이옥경 대표 개인 돈으로 

물어낼 판이었습니다.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더는 보채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일주일 후, 회장님께 1000만 원에 팔았노라 말씀 드리고 수술비를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날 저녁, 와인을 앞에 놓고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우리가 마시게 당신이 딸래?”

아내는 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손사래를 저었습니다.

따려면 당신이 따세요. 저는 못 해요.”

사실 우리 부부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와인병만 쳐다보다가 아내가 

말했습니다.

“10년 뒤면 박영관 회장님 팔순이시니, 그때 다시 선물로 드려요.”

현명한 생각이라 여겼습니다.

다시 와인을 잘 보관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알아보니 와인 냉장고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 길로 80만 원을 주고 와인 냉장고를 샀습니다.

누군가 먹을까봐 절대 손대지 마시오!’ 메모를 붙여 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서울옥션에서 회장님 댁으로 갔던 와인이 사무실을 거쳐 우리 집 거실

다시 제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연 많은 와인의 긴 여정이 여기서 끝났습니다.

종종 냉장고에 든 와인을 들여다보면서 계산해보았습니다.

1,200만 원을 주고 와인을 사고, 80만 원을 주고 와인 냉장고를 샀습니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1,000만 원까지 합하니 2,280만 원이 든 셈입니다. 저 와인이 2,280만 원짜리구나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10년만 보관하자 그러면 다시 제 주인을 

찾아간다, 여겼습니다.

세월이 속수무책으로 흘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4년이 지나는 동안, 회장님 건강도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쓰러지셔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제가 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담당 의사가 거의 일어나시지 못할 것처럼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그랬듯 회장님 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꼭 일어날 겁니다!” 하셨고, 회장님은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기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한 발 한 발 걸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야속하게도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쓰러지셨지만, 그때마다 회장님은 기어이 일어나셨습니다.

그런 회장님을 뵈어 오면서 저는 세월의 흐름을 시간의 숙성으로 여기는 와인의 가치를 

생각했습니다.

같은 와인이라도 어느 해 수확한 포도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폭염이 당도를 만들고 탄닌을 풍부하게 해 오래 숙성해도 변함없는 맛과 깊은 향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살아보니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진정한 품격은 인생의 풍파에 지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숭고한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제게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술값에 

깜짝 놀라고, 경매하는 짧은 시간 가슴을 졸였던 부끄러운 순간, 가장 적은 돈으로 산 

가장 값 싼와인을 드립니다.

제게 회장님은 와인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신 분입니다.

 

와이너리 주인 마담 루바는 엘리자베스 공주 약혼식, 결혼식 그리고 여왕 즉위식까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와인으로 자리를 빛냈다고 합니다.

팔십팔 세에 드리려던 것을 3년 앞당겨 생신을 맞아 원래 회장님 것이었던 이 와인을 

돌려드립니다.

존경하는 박영관 회장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복숭아는 무병장수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식탁 옆에 걸어두시고 매일 눈으로 잡수십시오.

한 입 꽉 깨 물으시면, 단물이 쭉 나오는 복숭아입니다.

꼭 건강을 회복하시고, 10년 더 젊어지시고 다시는 쓰러지지 마시기 당부를 담아 보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과 가치를 제게 선물하신 회장님!

회장님께서 세상에 내놓으신 특별한 향기를 반드시 기억하고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85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안병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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